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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급등 경험이 많으면 왜 소비를 덜 줄일까|같은 충격도 경험에 따라 달라졌다

읽는 시간 약 12분
같은 환율 급등에도 과거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가계 소비 선택

최초 작성일: 2026년 10월 2일
사실 확인 및 최종 수정일: 2026년 10월 3일

환율이 급등하면 같은 1달러짜리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해진다.

수입품 가격은 오를 수 있고, 해외 원재료를 쓰는 기업의 비용 부담도 커진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의 실질적인 힘이 약해지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국 가계는 언제나 똑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2026년 10월 1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공개한 연구에서는 과거 환율 급등을 여러 차례 경험한 가계일수록 다시 고환율을 만났을 때 소비를 상대적으로 덜 줄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충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충격을 만난 사람의 경험이었다.

환율이 오르면 지갑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숫자다.

1달러를 사기 위해 필요한 원화가 많아진다.

그러나 가계가 실제로 느끼는 변화는 환전창구보다 더 넓다.

수입 식품, 에너지, 해외여행, 직구처럼 환율의 영향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받는 소비가 있고, 수입 원재료나 부품 가격을 거쳐 시간이 지난 뒤 국내 판매가격에 영향을 주는 품목도 있다.

결국 가계에는 선택이 생긴다.

지금 살 것인가.

조금 기다릴 것인가.

더 싼 상품으로 바꿀 것인가.

아예 이번 소비를 미룰 것인가.

거시경제 뉴스에 있던 환율이 개인의 장바구니로 내려오는 순간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입 비용과 가격을 거쳐 소비 선택으로 이어지는 과정

그런데 두 번째 고환율은 첫 번째와 같지 않았다

한국은행 연구는 1998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해 가계의 과거 환율 급등 경험과 현재 소비의 관계를 살펴봤다.

연구에서는 가구주의 연령과 과거 원·달러 환율 움직임을 결합해 각 가계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환율 급등을 경험했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현재 환율 수준이 높더라도 과거 환율 급등을 많이 경험한 가계에서는 소비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처음 만난 위험과 이미 몇 차례 지나온 위험이 같은 숫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복된 고환율 속에서 가계가 구매력 충격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씩 학습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것을 고환율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된다.

오히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지를 이전보다 빨리 결정하게 됐을 가능성에 가깝다.

적응은 모든 소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생활비가 올라간다고 모든 지출을 같은 비율로 자르지 않는다.

먹는 것, 통신비, 자동차, 가전제품은 구매 이유도 다르고 미룰 수 있는 기간도 다르다.

이번 연구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기초소비재보다 상황에 따라 조정할 여지가 있는 선택재에서 환율 급등 경험에 따른 적응 효과가 상대적으로 뚜렷했다.

반면 내구재에서는 환율 급등 경험이 쌓일수록 소비가 줄어드는 방향이 나타났다.

냉장고나 자동차처럼 가격이 크고 구매 시기를 미룰 수 있는 물건이라면 높은 환율을 여러 차례 경험한 사람이 오히려 기다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적응을 이렇게 보는 편이 낫다.

돈을 예전처럼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줄이는 순서가 달라지는 것이다.

X세대와 MZ세대의 차이도 경험의 차이로 나타났다

세대별 결과도 달랐다.

환율 수준이 높은 시기에 X세대에서는 과거 환율 급등 경험이 많을수록 소비 위축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관계가 나타났다.

반면 MZ세대에서는 같은 방향이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이 결과를 어느 세대가 돈을 더 잘 관리한다거나 위기에 더 강하다는 이야기로 바꾸면 연구가 말한 범위를 넘어선다.

두 세대가 살아온 경제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직장생활과 자산 형성을 시작한 사람은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여러 환율 상승기를 경제활동 중 직접 겪을 기회가 많았다.

더 젊은 세대는 그 경험의 횟수와 시점이 다르다.

현재 통장에 찍힌 돈만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돈을 어떻게 지켜야 했는지에 대한 기억도 다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경험이 정반대의 소비 습관을 남겼다

그렇다면 경제충격을 많이 겪으면 사람은 항상 소비를 덜 줄이게 될까.

해외 연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제학자 울리케 말멘디어와 레슬리 셩 셴이 미국 가계를 분석한 ‘Scarred Consumption’ 연구에서는 다른 방향의 흔적이 나타났다.

과거 높은 실업률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미래 재정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현재의 소득과 고용상태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한 뒤에도 소비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관계가 단순히 소득이 줄었기 때문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위험을 판단하는 ‘경험 기반 학습’과 일치한다고 봤다.

한국의 환율 연구와 미국의 실업 연구는 같은 충격을 측정한 것이 아니다.

결과의 방향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반복된 환율 급등 경험이 다음 고환율에서 소비 위축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실업의 경험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소비를 더 조심스럽게 만드는 흔적으로 남았다.

하지만 두 연구가 만나는 지점은 분명하다.

현재 눈앞에 있는 경제 상황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전부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전에 겪었던 경제를 함께 들고 다음 결정을 내린다.

유럽에서는 과거의 물가 충격이 다음 위험을 보는 눈에 남았다

유럽에서도 과거 경험의 흔적이 관찰된다.

유럽중앙은행은 2026년 소비자기대조사를 분석하면서 과거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충격 경험이 새로운 경제충격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로지역 물가가 크게 안정된 뒤에도 가격 변화에 계속 높은 관심을 보인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자 가격에 주의를 기울이는 소비자의 비중은 다시 빠르게 높아졌다.

ECB는 과거의 고물가와 지정학적 불안이 남긴 경험을 ‘흉터’에 비유했다.

다만 이 사례는 한국은행 연구와 똑같이 실제 소비액의 변화를 측정한 분석은 아니다.

소비자가 앞으로 물가와 성장률을 어떻게 예상하고 가격 변화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는지를 중심으로 본 자료다.

그래서 한국 사례의 직접적인 증거라기보다는,

과거에 겪은 경제환경이 다음 충격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남을 수 있다는 보조 사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충격이 작다는 뜻이 아니다

이번 한국 연구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자산과 부채였다.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계에서 적응적인 소비행태가 더 뚜렷했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인 DSR이 높은 가계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처음 보면 이상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적다면 환율 상승에 더 크게 흔들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예산 제약을 경험한 가계라면 이미 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식이 형성됐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선을 그어야 한다.

자산이 적거나 부채가 많아서 적응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특정 집단에서 과거 경험과 현재 소비 사이의 관계가 더 뚜렷했다는 점이다.

왜 그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는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이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환율이 급등했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환율만 움직였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에는 실업과 소득 감소가 함께 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금융시장과 고용이 동시에 흔들렸다.

따라서 한 가계가 가진 ‘환율 급등 경험’에는 순수한 환율 경험뿐 아니라 당시 함께 발생한 다른 경제충격의 기억도 일부 섞여 있을 수 있다.

이번 연구 역시 이런 부분을 한계로 제시한다.

그래서 결과를 이렇게 읽는 것이 안전하다.

환율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소비가 반드시 이렇게 바뀐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경제충격을 직접 겪은 정도와 현재 고환율에서 보이는 소비행태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관찰됐다는 것이다.

인과관계와 관찰된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환율 숫자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인다

경제뉴스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숫자를 보여준다.

환율도 하나다.

하지만 그 숫자를 보는 사람의 기억까지 같지는 않다.

처음 큰 환율 상승을 겪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는 위험일 수 있다.

비슷한 장면을 여러 차례 경험한 사람에게는 지난번에 무엇을 줄였고 무엇은 결국 계속 지출해야 했는지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어떤 경험은 다음 소비를 덜 줄이게 만들고,

어떤 경험은 미국의 실업 사례처럼 오래도록 지갑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과거의 충격이 선택을 바꾼다는 점은 같지만 그 방향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소비를 이해하려면 현재 가격만 볼 수 없다.

소득도 봐야 하고 자산과 빚도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경제를 지나왔는지도 봐야 한다.

이번 한국은행 연구가 던진 질문은 결국 환율보다 사람에 더 가깝다.

같은 위험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처음과 같은 선택을 하는가.

아니면 지난번의 선택을 기억한 채 조금 다른 지갑을 여는가.

다음에는 이 질문을 확인해보세요.

생활비가 계속 부담스러울 때 소비자는 모든 지출을 줄일까, 아니면 돈을 아낄 곳과 계속 쓸 곳을 새로 나눌까?

→ 비싸진 장바구니는 어떻게 매대의 주인을 바꿨을까|싼 선택이 유통사의 힘이 된 뒤

자주 묻는 질문

환율이 오르면 가계소비는 무조건 줄어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환율 상승은 수입가격과 구매력 등을 통해 소비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실제 소비 반응은 가계의 소득, 자산, 부채, 소비 품목과 과거 경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환율 급등을 여러 번 경험하면 고환율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나요?

아닙니다. 한국은행 연구는 과거 환율 급등 경험이 많은 가계에서 현재 고환율에 따른 소비 위축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나타났다는 결과입니다. 환율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부담 자체가 없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X세대가 MZ세대보다 소비를 더 잘 관리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연구는 세대별로 환율 급등 경험의 횟수와 소비 반응 사이에 차이가 관찰됐다는 결과입니다. 세대의 능력이나 경제적 판단 수준을 비교한 연구가 아닙니다.

미국 연구에서는 왜 과거 경험이 소비를 더 줄이는 결과로 나타났나요?

미국의 ‘Scarred Consumption’은 환율이 아니라 실업 경험을 분석한 연구입니다. 높은 실업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 기억이 이후의 미래 재정 전망과 소비에 오래 남는 경향이 관찰됐습니다. 경제충격의 종류와 경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환율 연구와 같은 방향의 결과가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위기를 여러 번 겪으면 사람의 소비 습관이 바뀔 수 있나요?

여러 연구에서는 과거에 직접 경험한 경제환경이 이후의 기대와 소비 선택에 관계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만 어떤 충격을 경험했는지와 개인의 재정 상황에 따라 변화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 환율급등 경험과 가계소비 간의 관계 분석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 Scarred Consumption

European Central Bank — Geopolitical risk and scarring effects on consumer expectations: insights from the wars in Ukraine and Iran

머니레시피 편집자
머니레시피 편집자는 행동경제학, 소비자 심리와 의사결정 연구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정리합니다. 학술논문과 공공기관 자료를 우선적으로 확인하며, 연구결과가 적용되는 조건과 한계를 함께 살펴봅니다. 일상적인 소비와 돈에 관한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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